MIN YUL
기억하다 : 달콤 짭조름한 추억
10 May - 30 May 2023
<사소한 사물이 할 수 있는 사소하지 않은 일들>
황현승 | Director
사물은 기억을 소환한다. 민율이 화폭 안에 새겨 넣은 사물은 작가의 소소한 기억을 담고 있다. 사소한 사물을 통해 소환된 작가의 기억은 사적이지만, 그 기억 속에는 작가가 삶을 계속 긍정할 수 있게 만드는 보편적인 가치들이 담겨 있다.
민율이 사소한 사물을 꼼꼼한 붓질로 묘사하여 우리 앞에 제시하는 이유는, 그 사물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소박하고 순수한 삶의 가치들을 우리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물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우리가 떠올린 사물들이 우리를 각자의 진실하고 따스했던 순간으로 이끌어 주기를 작가는 기대하고 있다.
사소한 사물이 아득한 망각으로부터 끄집어낸 기억의 온기는 우리 마음 속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민율의 사물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커다란 소음으로 가득하고 때 묻은 삶 속에서 네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민율의 사물은 우리를 재촉한다. 삶의 대부분을 이루지만 여린 목소리를 지닌 탓에 쉽게 등한시되는 평범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너만의 사소한 사물을 통해 소환하라고.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사소한 사물의 기능’이다.
사소한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아름답고 고유한 기억에 내재된 힘은 우리의 시든 삶에 거듭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일종의 생명력이다. 작가는 기억 속에 잠재된 채 자생하고 있는 그 내적 생명력을 들풀의 이미지로 치환하여 사소한 사물 위에 심어 줌으로써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가시화시키고 있다. 때로 들풀이 딛고 있는 것은 작가가 유년에 맛보았던 ‘과자’인데, 그 과자가 생명을 키워내는 대지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기억이 가진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새삼스럽게 마음 저편에서 길어 올려진 애정 어린 순간들은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가 그 기억 안에 담긴 생명력을 우리의 현재에 위치시킬 때 현재라는 시간의 봉오리는 꽃으로 피어난다.
그림 앞에서 마음을 연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림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말에 응답하여 자신만의 대답을 들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민율의 그림을 마주하실 많은 분들의 마음마다 들풀같이 소담하고 분명한 생기가 돋아나길 바란다.
<작가 노트>
민율 | Artist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업이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중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들은 주로 매우 특별했던 것들이다. 일상에서 벌어졌던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은 대부분 기억에 남지 못하고 잊히게 된다. 그러나 소소했던 순간들이 삶의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에 작은 의미를 부여해 주고 싶었다.
<기억하다>시리즈는 오랫동안 함께한 작은 물건들이 기억하고 있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1.기억하다-작은 사물 이야기
동전 몇 개 들은 채로 오랫동안 책상 위에 놓여있는 저금통 , 싱크대 수납장의 한 켠에 있는 이 나간 찻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장식장 속 작은 인형들처럼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사물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다 하더라도 티 나지 않는 물건들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한 시간들을 나와 긴 시간 함께한 이 물건들은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기록하기로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에서는 클로버나 강아지풀, 제비꽃 같은 들풀들이 자라난다. 이러한 들풀들은 매해 길가 어디서나 피어나는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다. 누군가가 신경 쓰고 기르지 않아도 그곳에서 꽃피우고 자란다. 어딘가 소소한 일상과 닮았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사물과 들풀이 작품 속에서 만나게함으로 이들이 간직한 소소한 일상에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었다.
2.기억하다-과자이야기
과자를 먹다보면 가끔 오래된 추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릴 적 아빠가 사온 달달한 과자를 4남매가 나란히 앉아 나눠먹던 기억, 동그란 비스킷을 앞니로 조금씩 부서지지 않게 먹어가며 초승달 모양을 만들던 기억, 비스킷 두 개 사이에 크림을 넣어 만든 과자를 살살 비틀어 가운데 크림만 먹고 다시 몰래 넣어둔 기억,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누군가 보내준 종합 과자 선물세트에 즐거워하던 기억 등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기억들이 과자의 고소하고 달콤 짭조름한 맛과 함께 떠오른다. 과자는 이러한 면에서 ‘기억하다-작은 사물이야기’의 사물과 같은 기능을 한다. 어릴 적 먹던 과자는 그때의 소소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작품 속 과자에서는 세 잎 클로버가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네잎 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하여 특별하게 생각하지만 세 잎 클로버는 단지 흔한 길가의 풀로 여긴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기억들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길가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클로버는 세 잎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작품 속 과자에서 자라고 있는 세 잎 클로버는 소소한 일상 속 작은 행복들을 의미한다. 가끔은 특별한 행운 보다 평범한 시간들이 주는 일상 속 작은 행복들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이 행복들이 모여 삶의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