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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YUNJUNG
Daily Light
20 July - 2 August 2023
<어둠이 빛으로, 슬픔이 춤으로>
황현승 | Critic
최윤정의 그림 안에서 빛과 그림자는 서로 뚜렷한 구분 없이 이어지고 혼재한다. 빛과 그림자가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종종 서로의 자리를 뒤바꾸는 듯 하다. 최윤정의 작품 세계는 ‘빛’이라는 요소로 요약되지만, 빛만큼이나 ‘어둠’이라는 요소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그녀의 그림 위에서 빛과 어둠은 분명 반대 개념이지만, 결코 반목하는 개념은 아니다.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는 빛을 도드라지게 하는 아이러니가 화면 안에 넘치고 있다.
지난날, 최윤정은 고된 수련기를 보냈다. 다른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각박한 날들을 견디던 중, 매일 오가던 길 위에서 하나의 풍경과 마주한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빛이 내려와 낡고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장면을 삶에 대한 강력한 표상으로 읽어낸다. 최윤정은 그 순간을 그림으로 옮기고, 화단에 등단하여 작가의 삶을 시작한다. 어두운 시기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풍경을 발견하게 해 주었고, 그 풍경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면서 예술가로서의 삶은 빛으로 들어선다. 이후 빛과 그림자는 작가에게 줄곧 작품의 중심 주제가 된다.
이처럼 최윤정이 그려 온 빛과 그림자에 관한 일련의 그림들은 그녀가 체험한 삶에 대한 은유이다. 그녀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미지를 통해 어두운 날들 속에 기쁨의 날들이 배태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슬픔 뒤에 찾아온 기쁨 속에도 또 다른 슬픔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 슬픔 또한 다시금 춤으로 바뀔 테니까. 그것이 삶이라고, 그림 속의 빛들은 속살거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캔버스 1호 크기의 작품을 매일 1점씩 그려서 모은 신작 ‘Oneday’ 연작을 중심으로, 작가의 ‘Illusion’ 연작 중 수작들만 엄선하여 구성하였다. 관람자들은 전시장에서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최근 작업까지 감상하며 작품의 변화 과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작가가 지난 몇 해 동안 이어 온 ‘Illusion’ 연작은 초기에 사실주의적 양상이 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무나 풀 그림자의 뚜렷한 형상이 사라지고, 화면에는 빛과 그림자의 몽환적인 흔적만 남게 된다. 작가는 구체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빛과 그림자의 환영만 남김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함축적인 상징으로 발전시킨다. 최근에는 기법과 형식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고수했던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떠나 감각적인 붓질로 화면을 채우는가 하면, 사실적인 묘사를 탈피하여 단순한 빛을 화면 중앙에 간결하게 배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가의 행보는, 작가가 빛을 더이상 이야기의 매개체로 인식하지 않고, 작가의 관심이 빛 그 자체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동시대 작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신작 ‘Oneday’ 연작은, 작가에게 다시 찾아온 고난의 시간 속에서, 그녀가 스스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시작하여 100일 동안 이어 간 프로젝트다. 최윤정은 일상에서 길어 낸 희망들을 날마다 한 조각의 빛으로 환원하여 작은 화면에 기록하였다. 완벽한 하루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롭게 존재하는 분명한 삶의 의미. 그 의미는 얼마나 소소하고 다채로운지. 나날의 희망은 평범함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그것은 발견하는 자의 몫이다.
‘예술은 완벽한 패스와도 같다. 단순히 세상에 던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 James Turrell
최윤정은 매일 자신이 찾아낸 희망의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빛을 향한 꾸준한 움직임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며 우리를 빛으로 이끄는 듯 하다. 작가는 자신이 세상에 던지는 한 조각의 빛을, 우리가 붙잡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 노트>
최윤정 | Artist
illusion
Illusion 회화 작업은 나의 일상 공간에서 발견되는 빛과 그림자의 찰나적이고 환영적인 이미지를 포착함으로써 시작된다.
어느 날 나는 매일 오고 가는 차갑고 딱딱한 공간에서 작은 바람에 일렁이며 영롱하게 빛나는 나무의 빛과 그림자를 마주한다. 그 현상이 공간에 잠시 머무를 때, 난 그 장소가 처음인 듯 새롭고 신비하여 한동안 막연하고, 멍하니 대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따스한 경험으로 인해, 지루하고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위로와 어떤 순간이 가진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별거 아니거나 감사하지 않은 순간은 없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에 머물며 반짝거리는 빛들과 같이 매 순간 흔들리며 빛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상 또는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시원하고 차분한 그림자, 우연히 다른 시간에 길을 걷다가 발견하는 흔들리는 빛 덩어리들, 매시간 달라지는 공기와 온도, 따스한 느낌과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찰나의 자연의 시간 들 모두가 나의 작업 소재와 작품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 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보고 느낀 일상의 감정들과 생각을 반영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다양한 색감들과 부드러운 느낌을 투영함으로써 더욱 편안하고 안정된 표현으로 관람자 역시 나의 작품을 통하여, 내가 느낀 따스한 위로와 나른한 휴식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일1호 프로젝트
2023년 1월 1일부터 100일 동안 1호 사이즈 캔버스에 담아낸 작은 빛들은 온전히 나를 위한 작업이었다.
돌도 안된 아이를 키우며 내 작업은 뒷전이었고 잠깐 내 시간이 생겨도 육아에 관한 정보들을 찾아보느라 정신까지 지쳐있었다. 스트레스로 만성 피부병에 우울증 증상까지 와서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 느낌이었다. 새해부터는 변화가 필요했다. 건강하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테니까.
나에게 온전한 내 시간을 24시간 중 1시간, 아니 5분이라도 갖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없을 땐 그냥 하늘의 빛이라도 색칠해 봐야지 생각하고 시작한 1호 그리기 덕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내 것을 한다는 것 자체로 알찼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그날의 빛, 또는 오래전 수집해 놓은 추억의 빛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작업하며 한 점 한 점 쌓일 때마다 두근거리고 행복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니 신기하게 피부병도 나아지고 활력이 생겼다. 그림으로 모든 것들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의무감이나 숙제가 아닌 즐기는 마음으로 100일 동안의 목표를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1호 100일 프로젝트는 나에게 아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통잠을 자는 100일의 기적과도 같은 뜻깊은 작업이 되었다.